작가 성해나의 질문
어제 본 뉴스에서 성해나 작가의 '혼모노'가
3개월 연속 최다 판매 도서에 올랐다는 소식을 접했다.
박정민배우가 유튜브에서 '혼모노'를
추천했을 때만 해도 이렇게 화제작이 될 줄은 몰랐는데...
개성 있는 단편들의 긴 여운을 느낀 건
나 혼자만은 아니었나 보다.
의뭉스러운 제목들 뒤에
풀어지는 각각의 이야기들은
가볍게 읽히면서도 어렵다.
인물들의 대사 한마디에
숨은 뜻이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 뜻을 이해하는 데에는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에 대한
넓고 깊은 시야가 필요한 듯하다.
때문에 책을 읽는 내내 저 어리고
여려 보이는 작가의 깊이는 도대체
어디까지일까...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오히려 읽을수록
그녀보다 적어도 10년은 더 살았을 내가
그녀가 던져놓은 물음에 대한 답을
조금이라도 할 수 있을지,
애초에 그녀의 물음을 이해한 것인지 조차
의문스러워졌다.
'상상력이 있기에 우리는 많은 것을 이겨낸다.'
라는 하루키의 말처럼
어쩌면 그녀는 우리가 소설의 결말을 스스로
붙여 나가며 각자 자기만의 해답을 찾기 바라는 건지도 모르겠다.
각각의 단편들에 대하여...
이 책은 7개의 단편을 모아놓은 소설집이다.
어느 작품 하나 빠져들지 않을 수 없는
일곱 개의 이야기들 중 기억에 남는 몇 가지를 간추려 본다.
길티 클럽 : 호랑이 만지기
길티클럽은 수려한 외모와 작품성으로
주목받던 영화감독 김곤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한때는 국제 영화제에서 상을 수상하며
유명세를 탄 그에게 열광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그 사건'이 일어난 후에는
대중의 시선이 싸늘해졌다.
소설 속 주인공인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광적으로 좋아하고 응원했다.
진실이 무엇이든
나는 그의 작품을 이해한다고 믿었고,
감독이 영화에 출연하는 7살 난
아역배우가 눈물연기를 못한다고
팔뚝을 피멍이 들정도로 꼬집었다는
사건이 일어난 뒤에도
사실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영화를 찍다 보면 예민해질 수 있다고
그를 두둔했었다.
그런데 그의 두 번째 영화가 개봉하던 날
무대인사를 하던 그가 '그 사건'에 대해
정식으로 사과했을 때,
'나'는 혼란스러움을 느낀다.
내가 생각했던 그에 대한 환상이 무너지며
허무함을 느낀 나는 그 이후 김곤에 대해
잊고 살아간다.
그러다 치앙마이로 남편과 여행을 떠난
어느 날 타이거 킹덤에서 호랑이 만지기 패키지를
경험하던 중 나는 그를 떠올린다.
오래전 SNS에 호랑이를 만지는 동영상을
업로드했던 그 감독의 모습.
발톱과 이빨을 모두 빼서 안전하다는
호랑이는 축 쳐진 채로 엎드려 있고
사람들은 고압전선으로 둘러싸인
호랑이 우리에서 그런 호랑이 만지는 것을
돈을 내고 경험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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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는 것을 얻고자 할 때
사람들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작품이다.
스무드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듀이는
본인이 '미국인'이라는 데에 의심을 가져본 적이 없다.
그의 어머니는 어려서 미국으로 입양됐었고
아버지 또한 이민자였기에 어려서부터
'너는 미국인이다.'라는 말을 듣고 자랐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업무 때문에 한국을 찾게 되었다.
80년대 한국을 생각하고 온 그에게
한국의 모습은 낯설기만 하다.
더군다나 그가 묵는 숙소는
고급 아파트로 아파트 커뮤니티 안에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번에 하는 전시도
이 아파트 주민만을 위한 이벤트이다.
숙소에서 잠시 밖으로 나온 듀이는
복잡한 동선에 길을 잃고
광화문 한복판에서 극우단체의
집회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한국말을 모르는 그에게
집회의 아주머니는 '축제'를 하고 있는 거라고
설명하고 그곳에서 잠시나마
동질감을 느낀 그는 그날을
'아주 좋은 하루'로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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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미국인이라고 생각했지만
자신과 다르게 생긴 사람들 틈에서 자라는 동안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했을 듀이는
어이없게도... 극우단체의 집회에서
실마리를 얻는다는 설정이 재미있으면서도 황당하다.
혼모노
잘 나가던 무당인 '나'는 바로 옆에 신당을 차린
신애기에게 자신이 모시던 신 '장수할멈'을
빼앗긴다.
접신을 하지 못하니 굿을 하다가
얼굴에 피를 보게 되고
그 영상이 떠돌며 일거리도 뚝 끊긴 '나'는
마지막 희망으로 생각했던
국회의원 '황보'마저 신애기에게 굿을 맡기자
좌절하게 된다.
평생을 무당만 하며 살아왔는데
이제 와서 다른 직업을 찾아볼 수도 없는 나는
결국 신애기의 굿판 바로 옆에 굿판을 벌이고
장삼을 피로 물들이며 작두를 탄다.
진짜보다 더 진짜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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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모노는 일본어로 진짜, 진품을 의미한다.
작품은 진짜와 가까의 모호한 경계에 대해
이야기하며 진짜도 누군가에 의해 가짜로
보일 수 있고 가짜도 진짜처럼 퍼지는
현실을 풍자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어렵게 읽었던 소설이다.
구의 집 : 갈원동 98번지
건축가 여재화는 독재시절
수많은 국가 기관들의 건설을 맡으며
일손이 부족해지자 자신의 제자들 중
실력은 있으면서 뒷배는 없는
만만한 제자인 구보승을 떠올린다.
그들이 설계해야 할 건물은
유신에 반대하는 불온세력을 처벌하는
용도로 사용될 곳이었고
과묵한 구보승은 이 일을 함께하기에
적합한 인물인 듯했다.
그러던 중 취조실을 설계하며
인간에게 두려움과 무력감을 느끼게 할
공간을 만들고자 노력하는 구보승의 모습에
여재화는 섬뜩함을 느낀다.
건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이라는
전제를 두고 두 사람은 갈등하고
건물이 모습을 갖추면서는
구보승도 본인이 인간을 위한 공간을
만든 것인지 확신을 잃게 된다.
건물의 이름을 '구의 집'이라 지으며
여재화는 끝까지 비겁한 모습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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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선 길티클럽에서 처럼
인간이 본인이 원하는 결과물을 얻기 위해
타인의 아픔이나 그로 인해 발생할 참담한
결과들에 대해서는 얼마나 무심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