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원과 이상의 모더니즘
청담동에 있는 유료도서관 소전서림에서는
1년 전까지만 해도 서점의 1층 아트 갤러리를 활용해서
문학에 관련된 전시를 하곤 했었다.
지금은 카페가 된 그 공간에서 했던 마지막 전시는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이라는 박태원의 소설을 다룬
[구보(仇甫)의 구보(九步)]였다.
1934년 조선 중앙일보에 연재했던 박태원의 소설을
연재 90주년을 맞이해 기념으로 전시회를 연 것이다.
전시를 보면서 식민지 시대에 지금의 나보다도
나이가 어렸던 젊은들의 삶의 방식을 멀찍이
떨어져 바라보는 것은 묘한 즐거움을 느끼게 했다.
지금은 까마득한 천재들의 흔적을 좇으면서
소설이 그들의 일상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라
상상을 하니 마치 시간 여행이라도 하는 듯한
착각도 든다.
소설 속 주인공인 구보는 박태원의 필명이기도 하다.
그는 인쇄매체와 언어의 관계에서 언어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을 지속하며
각 화의 시작 부분을 큰 글씨로 표기하는 등의
새로운 시도를 계속하는데 이렇게
시각, 촉각 등을 결합해서 예술로 소화하려는 시도는
박태원과 이상의 작품에서 특히 도드라 진다.
이 소설도 연재 당시 박태원이 소설을 쓰고 이상이
삽화를 그렸었다.
박태원과 이상은 구인회의 멤버로 모두 세련된
감각을 가진 모더니스트였다.
그들과 함께 구인회의 멤버이자 신문기자였던 이태준은
유명하지는 않지만 재능이 있던 이들이
신문에 소설을 연재를 할 수 있도록 이끌었고 덕분에
이상도 같은 해에 '오감도'를 연재할 수 있었다.
당시 대중에게 크게 인기가 없었던 이상은
문학을 함께 하는 동료들 사이에서는 실력을 인정
받았지만 대중이 이해하기에는 난해한 작품을
썼기 때문에 평생 가난한 작가로 살아야 했다.
이상의 본명은 김해경으로 그는 원래 건축가였지만
폐결핵을 앓으면서 건설현장에서 일할 수 없게 되자
글을 쓰는 일로 업을 바꾸게 된다.
그 또한 인쇄에 관심이 많았는데 이는
인쇄소의 활판공이었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새로운 경계를 넘어 창작을 하는 그들의
집필 방식은 1930년 식민지 시대 변화해 가는
경성의 모습을 나타내는 방식으로 볼 수 있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줄거리
소설은 1934년 식민지 수도 경성에서
구보라는 소설가가 목적 없이 도시를 배회하며
보고 생각하는 것들을 서술하는 형식이다.
동경으로 유학까지 다녀왔으나 직업을 갖지
못하고 집에서 근근이 집필활동을 하는
소설가 구보는 스물여섯의 나이에 결혼도
하지 못하고 딱히 만나는 처자도 없는
어머니의 근심거리이다.
어머니의 눈총을 피해 거리로 나온 그는
무작정 길을 걷다가 전차를 탄다.
전차 안에서 그는 6개월 전 선을 봤던
여인을 마주하지만 선 본 뒤로 진척 없이
흘려보낸 여인과 혹여라도 눈이 마주칠까
겁을 내며 그녀를 떠나보낸다.
여자를 따라갔어야 하나...
뒤늦게 후회도 하지만 이미 여인이 탄
버스는 떠난 뒤이다.
여인을 잡았다면 행복했을까...
그는 길을 배회하는 내내 행복에 대해
고민한다.
금시계를 꺼내보는 저열한 옛 동무와
그의 어여쁜 애인을 보며 황금광 시대에
금이 있는 자들과 함께하는 여인은 행복할까...
생각하며 행복과 돈의 상관관계를 고민해보기도 한다.
길을 걷다 무료해지면 끽다점에 들러
동무와 '율리시스'에 대해 논하기도 하고
동무와 헤어져서는 경성역에서 지나가는
행인을 관찰하기도 한다.
집필활동에 도움이 될까 하여
경성역의 모습을 담기 위해 노트를
펼치기도 하지만 주변을 감시하는 사복 경찰의
눈초리에 이마저도 포기하고 만다.
식민지 시대에 경찰의 눈에 잘못 찍히면
그대로 잡혀가는 것이 일상이었으리라...
짐작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청진동의 다방은
이상이 운영하던 다방 '제비'를 떠올리게 한다.
두 사람 모두 모더니즘 소설을 주로 썼고 음악에도
조예가 깊었던 것 등을 미루어 '제비'에서
그들이 나누었을 무수히 많은 대화를 상상해
볼 수 있다.
새벽 두 시, 친구와 헤어지며 구보는
좋은 소설을 쓰리라... 다짐한다.
어머니의 사랑을 생각하며 어머니가 혼인
얘기를 꺼내더라도 이를 물리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도 해보며 소설은 끝이 난다.
실제로 박태원은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을
발표한 후에 결혼을 하기도 했으니
이 소설이 그의 경험을 그대로 옮긴 작품일 것이라는
예상의 신빙성이 높아진다.
책 말미에 수록된 대담에서는
박태원의 문학과 이상의 문학을 연구하는 이들의
이 작품에 대한 뒷 이야기를 들어볼 수도 있는데
우리가 알지 못했던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점이 매우 흥미롭다.
1930년대에 활동했던 지식인들의 이야기를
보면 모두 이리저리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금홍이와 헤어진 이상이 결혼했던 변동림(김향안)은
이상과 사별 후 김환기 화백과 결혼을 하고,
김환기는 이중섭과 그림을 논하던 사이이며,
이중섭은 시인 구상과 친분이 있는 사이라는 등...
하나를 알면 퍼즐을 맞추듯 열을 알고 싶어지는
이 시대의 이야기가 점점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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