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인한 여성의 삶에 대한 이야기
'시선으로부터'라는 제목에는
심시선이라는 소설 속 인물로부터
뻗어 나온 한 가족의 이야기와
그녀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으로부터...
라는 두 가지 의미가 담겨있는 듯하다.
소설의 중간 중간 삽입된
그녀가 살아 생전 기고했던 글과 인터뷰 등에는
고단했던 그녀의 이민생활과
자신의 삶을 대하는 그녀만의 방식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민자에다 힘없는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녀가 사람들에게 손가락질받아야 했던 일들을 보면서
그 시절 모던걸이라 불리던 화가 나혜석을 떠올렸다.
현모양처만이 좋은 여성은 아니라며 잡지에 글을
기고하는가 하면 남편의 친구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다는 이유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보기 드문 여성.
남편도 불륜을 저질렀음에도 자신만 손가락질 받아야 하는
현실을 부당하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던 실존했던
신여성 나혜석을 모티프로 심시선이라는 또다른
모던걸이 탄생한것은 아닐까...
나혜석은 결국 행려병자로 생을 마감했지만
자식들과 따스한 가정 안에서 살다가
조용히 숨을 거두는 시선의 마지막은
행복했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아 본다.
시선으로부터 줄거리
심시선은 한국전쟁때 가족의 비극을 겪은 후
하와이로 이민을 떠나 농장 노동자로 일하던 중
우연히 독일 화가 마티아스 마우어를 만난다.
그림을 그리고 싶었던 그녀는 공부를 시켜주겠다던
그의 제안에 독일로 그를 따라나서고
그때부터 그녀의 삶은 평범한 것과는
멀어지기 시작한다.
유명한 화가였지만 폭력적인 마티아스는
그녀가 화가로서 독립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했고 지능적으로 집요하게 그녀를 괴롭힌다.
자신의 편이 하나도 없는 그곳에서
그녀는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않고
조용히 지내는 것이 가장 현명한 것임을 깨닫고
없는 사람처럼 지냈지만 마티아스와 친하게 지내던
무리에서 이용만 당하고 제대로 끼지 못하는
요제프 리와 가까워지게 되면서
마티아스와 그 주위의 사람들에게 미움받는다.
마티아스는 자신에게서 벗어난 시선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주기 위해 진심으로
그녀를 사랑했다는 유서와 함께 전 재산을 그녀에게
남긴 채 건물에서 뛰어내리고 이 사건으로 인해
더 이상 독일에서 살 수 없게 된 시선은 요제프 리와
한국행을 선택한다.
한국에서 아이 셋을 낳았지만 요제프와는 결국
이혼을 선택한 그녀는 여러남자를 만났다는 이유로
여전히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아야했다.
그러나 사람들의 시선에는 전혀 흔들림 없이
시선은 자신만의 생각을 인터뷰나 강연등에서
떳떳하게 말하며 그 시대에는 보기 드문
여성의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보여준다.
소설 속에서 그녀는 죽고 없지만
시선으로부터 뻗아나온 자식들은 그녀가
세상을 떠난 10주기를 기념하여 하와이에서
그들만의 방식으로 제사를 지낸다.
그리고 그곳에서 각자의 아픔을 치유하며
성장해 나아간다.
에필로그
기존에 봤던 정세랑의 소설들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는 작품이다.
여전히 유머가 넘치고 발상이 새롭지만
여성의 인권에 대한, 그리고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이 담겨있다.
그저 스치고 지나가는 뉴스들이
누군가에게는 씻을 수 없는 상처이고
인생이 바뀌는 계기가 되는 것들임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사람이 사람에게 해가 되지 않는 세상을
꿈꾸며 책을 덮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