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원이 다른 SF 소설 '지구 끝의 온실'
작년 겨울 방콕으로 친구들과 여행을 가면서 '지구 끝의 온실'을 챙겨 갔었다.
앙상한 가지를 드러낸 가로수만 가득했던 서울을 벗어나 사방이 생생한
초록빛으로 물들어있는 방콕에서 '모스바나'라는 식물을 토대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소설을 읽는 것은 묘한 친근감과 설렘을 동시에 느끼게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김초엽이라는 작가가 누구인지도 몰랐기에
소설을 읽으면서 느꼈던 감정은 감탄이라기 보다는 충격에 가까웠다.
더스트로 황폐화된 지구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강인한 생명력을 가진 모스 바나는 유일한 희망이지만 동시에
섬뜩하리만치 강한 번식력으로 식량 재배까지 망치게 만드는
필요악이기도 하다.
여행 중 소설에 푹 빠져있을때 즈음 방콕의 한 카페에서
반얀트리를 만났다.
호텔 이름으로만 들어본 생소한 나무는 생각보다 거대했고
끊임없이 가지를 뻗어 옆으로 번식해 나아가는 반얀트리의 모습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모스바나를 떠올렸다.
자생적으로 번식하는 거대한 나무는 아름답고 굳건했지만
번식을 하며 옆에있는 식물을 졸라 죽게 한다.
어떻게 보면 우리의 모습과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명은 빠른 속도로 발전해 신 인류를 향해 가지만 한때 우리가 당연한 듯
누렸던 자연과의 공생은 점차 불가능해져 가고 있다.
먼 미래에 황폐해진 지구의 모습을 상상하는 책을 읽으며
하루하루 변해가는 날씨와 기후를 다시 한번 되돌아보았다.
좀 더 따뜻하게, 좀더 시원하게, 좀더 편리하게 생활하고자 하는
우리의 욕심은 언젠가 아름다운 우리의 터전을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망가뜨릴지도 모른다.
더 늦기 전에 환경문제에 대한 고민이 깊어져야 할 때가 왔다.
여행지에서 읽는 책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것들에서 동질감을 느끼고
여행지에 한층 깊이 빠져들게 되는 묘미가 있다.
그리고 그것은 다양한 방식으로 내 삶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때부터 김초엽 작가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가가 되었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김초엽 작가의 여러 단편을 모아놓았다.
한편 한편 끝날 때마다 더 읽고 싶은 아쉬움이 남는 번뜩이는 상상력의
집합체 이기도 하다.
그중 책의 제목이기도 한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우주여행이
가능해진 먼 미래의 이야기이다.
책을 읽으며 차원이 다른 우주로 떠나는 웜홀을 상상해 보았다.
만화에서 보던 블랙홀 같은 동그란 구멍으로 빨려 들어가 전혀 다른 우주로
간다는 것이 미래에는 정말로 가능해질 것 같다는 착각에 빠져들게 된다.
이미 100년 전 폐쇄된 우주정거장에서 안나는 제3행성 슬랜포니아로 가기 위해
머물고 있다.
5년 전부터 정거장을 폐기하라는 명령을 받고 왔던 사람들은
정거장에서 꿈쩍도 하지 않는 안나때문에 모두 임무를 완수하지 못하고
돌아갔던 터였다.
그녀가 한창 냉동수면 기술을 연구하던 젊은 시절, 남편과 아들은 자원이 풍부하다는
꿈의 행성 슬랜포니아로 떠났고 연구를 마치고 따라가겠다던 그녀는
슬랜포니아로 향하는 마지막 우주선의 탑승시간을 놓치고 말았다.
결국 100번이 넘는 냉동수면을 거치는 동안 그녀의 나이는 백 일흔 살이 되었고
이제는 슬랜포니아에 남편도 아들도 살아있지 않겠지만 그들의 무덤이라도
보고 싶은 그녀는 그곳으로 가고자 하는 꿈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같은 하늘조차 공유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더욱 그녀를 슬랜포니아로 향하게 만들었고 이제는 그곳으로 갈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녀는 머나먼 그 행성을 동경하고 있었다.
'나는 내가 가야 할 곳을 정확히 알고 있어.'
결국 마지막 말을 남기고 그녀는 개인 우주선을 타고 떠나게 된다.
언젠가 그곳에 닿을 것이라는 희망을 안고...
먼 미래에 대한 작가의 상상이 빛나는 소설이다.
영화에서 보던 냉동수면기술과, 웜홀, 우주정거장 등은 실제로 몇십 년 후
상용화될 기술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지구 이외에 사람이 살 수 있는 다른 행성을 찾아 떠나는 그날이 언젠가는
오게 되겠지....
그곳에 대한 소설도 언젠가 쓰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또 다른 지구의 모습 '파견자들'
더스트로 황폐해졌던 지구와는 또 다른 모습으로 황폐화된 지구의 모습을 그렸다.
우주에서 유입된 미생물이 지구에 떨어진 후 빠른 속도로 번식해 가는 범람체는
다양한 원색의 아름다움을 지닌 채 일렁이는 생물이지만
사람이 범람체에 노출되거나 먹게 되면 광기와 죽음에 이르게 되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범람체와 공생할 수 없었던 인류는 결국 지하세계로 숨어들게 되었고
지구의 표면은 온통 범람체가 장악한 상태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상을 활보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었으니, 이들을 '파견자'라고 부른다.
파견자들은 범람체에 견딜 수 있는 저항성과 강인한 체력을 가진 이들로
파견자가 되기 위해서는 엄격한 테스트를 거쳐야 한다.
그들은 주로 지상에서 범람체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입수해 범람체로부터 다시
지구를 되찾으려는 노력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유능한 파견자였던 이제프는 범람체에 노출된 어린아이들을 관찰하는 연구소에
발령받은 후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 태린을 만나게 된다.
뇌에 파고든 범람체에 적응하지 못하고 죽어간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 태린은
자신의 뇌 속에 있는 범람체에 "쏠"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적응해 간다.
특별한 모습을 보이는 태린에게 이제프도 마음을 열게 되었고 둘은 가족과 같은
유대감을 느낀다.
여러 위험 속에서 이제프는 태린을 구하고 이제프의 모습을 보며 파견자를 꿈꾸던
태린은 꿈을 이루게 되지만 중요한 순간 쏠에게 배신당하고 생명을 보장하지 못할
만큼 위험한 임무를 맡게 된다.
처음으로 맡은 임무에서 태린은 늪인들을 만나고 그곳에서 그동안 알지 못했던
범람체와 인간이 공생할 수 있는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뜨게 된다.
그리고 뇌 속에 범람체를 가지고 사는 자신의 모습과 크게 다를 것 없는 그들을
지켜내기 위해 결국에는 이제프와 갈등하게 되는데....
인간은 인간의 모습으로만 살아가야 한다는 고정관념, 인간 이외에는 모두
적이라는 인류주의를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소설이다.
다른 모습을 하고 있어도, 생활 방식이 달라도 서로에게 해가 되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공존할 수 있지 않을까.... 소설을 읽고 틀에 박힌 세계관에서 벗어나는
경험을 선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