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의 노벨 문학상 수상
어제저녁 엘리베이터를 탔다가 무심코 스크린에 뜬 뉴스를 보았다.
우리나라 작가로는 최초로 한강 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이
여러 제목을 달고 속보로 뜨고 있었다.
아직 젊은 작가인 그녀가 2024년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라니...
기쁨도 크지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미 일본에서는 두 명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를 ( 1968년 가와바타 야스나리, 1994년 오에 겐자부로)
배출했지만 아직 한국에서는 한 명의 수상자도 없었기에 언젠가는...이라고
기대는 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갑작스럽고 신선한 작가라니...
'어떤 작품이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느냐' 하는 심사 기준이 시대에 따라 달라지긴 하지만
아시아 권을 위주로 봤을때 역사적 사실을 다룬 '만 엔 원년의 풋볼'을 쓴
오에 겐자부로의 사례가 있기때문에 어쩌면 한강의 '소년이 온다'나 '작별하지 않는다'가
스웨덴 아카데미의 관심을 끌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주하기 힘든 슬픈 역사들을 독특한 시점으로 적나라하게 서술한 두 작품은
읽으면서도 마음이 아프고 숨이 막혀오는 듯한 느낌에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런 아픔을 있는 그대로 인지하는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작품들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심신이 나약한 나로서는 굳어진 찬밥을 먹듯이 꾸역꾸역 읽어나갔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젠가 우리 아이들이 크면 이 책들은 꼭 읽게 해 줘야지 하는 생각을 품었었는데
이제 노벨 문학상 수상작이 됐으니 내가 추천하지 않아도 여느 추천 목록에나 이 책들이
올라가 있겠지...
나는 그저 우리 아이들이 추천 도서 목록에 관심을 갖는 아이가 돼 있기만을 바라야겠다.
수상 소식을 접하고 하루가 더 지난 오늘은 서점에서 작가의 책들이 품절대란이 일어났다는
기사가 뜨고 있다.
새삼 '노벨상'이라는 상의 위력에 놀라게 된다.
한 사람의 인생이 하루를 기점으로 이렇게 달라질 수도 있는 거구나...
비록 내가 주인공은 아닐지라도, 인생은 한번 살아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희극으로...
한강의 작품 세계
스웨덴 아카데미 측에서는 그녀의 작품을 두고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의
연약함을 강렬한 문체로 드러냈다."라고 평가한다.
한강의 대표작들을 보면 5.18 민주화 운동을 다룬 '소년이 온다', 제주 4.3 사건을 다룬
'작별하지 않는다', 2016년 맨부커상을 수상한 '채식주의자' 등이 있다.
5.18 때 죽은 소년 동호의 시점으로 그날의 참혹함을 기록한 '소년이 온다'는 동호뿐만 아니라
그의 친구, 그를 좋아했던 여인, 살아남은 사람들 등 다양한 각도에서 사건에 대한 기억을
전한다. 읽으면서 너무 슬프거나 너무 잔인해 중간중간 책을 놓게 되지만 끝까지 읽어 내야 할
필요가 있는 소설이다.
작가는 비극적인 사건을 사실적으로 전함으로써 우리가 그런 역사적 사건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제시한다.
제주 4.3 사건이 배경 된 '작별하지 않는다'는 세 여인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우리 국민이라면 거의 알고 있는 5.18 민주화 운동과는 달리 제주 4.3 사건에 대해서는 알고 있는
이가 많지 않다.
섬의 도민들을 다 죽여서라도 공산화를 막으라는 미군정의 지시에 갓난아이의 머리에 까지
총구를 겨누는 극우 청년들은 이미 정상적인 판단을 하기 힘든 광기에 사로잡혀 있었기에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1948년 제주도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2013년 겨울 서울의 한 독립영화를 상영하는 소극장에서 영화 '지슬'을 봤던 기억이 났다.
당시에도 영화의 내용이 실제 사건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는 데에 슬프고 놀라웠는데
글로 보면서는 더욱 인간의 잔인함에 넋을 놓게 되었다.
아무 이유 없이 가족을 잃게 된 사람들의 슬픔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무거운 소설이다.
그들이 다시 만날 수 없는 가족과 끝내 작별할 수 없는 것처럼 우리도 아픈 역사를 잊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마지막으로 단순한 인생을 살고 있는 나로서는 너무나 이해하기 힘들었던 '채식주의자'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소설은 앞서 이야기한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한 책들과는 다르게 육식을 거부하는 한 여인에 대한 이야기이다.
소설의 주인공 영혜는 평범한 여인이지만 육식을 거부하면서부터 평범하지 않은 사람이 된다.
어릴 적 가정폭력을 겪긴 했지만 그녀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는 특별히 서술되지 않는다.
평범한 여인과 거리가 멀어지면서 남편에게도 버림받은 영혜는 점차 정신을 놓게 되고 자신이 나무라고
여기며 음식물 섭취마저 거부하는 지경에 이른다.
그 과정에서 예술을 하는 형부, 어려운 환경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언니 인혜의 이야기가 겹쳐지며
내용이 점차 어려워진다.
세편의 중편을 장편으로 엮은 이 소설은 솔직히 보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단순히 채식을 옹호하는 글도 아니고 그렇다고 페미니즘적 성격을 띠는 것도 아니다.
폭력성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지려는 영혼에 대한 글이라 해도.... 개인적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게 사실이었다.
내가 아직 많이 부족한 탓이겠지...
언젠가 더 성숙하고 생각의 깊이를 채운 후에 다시 한번 도전해 봐야 할 듯하다.